피히테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는 1762년 작센의 가난한 리본 직조공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 거위를 쳤다. 한 귀족이 우연히 그가 설교문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되풀이하는 것을 듣고 크게 놀라 학비를 대어 학교에 보냈다. 그는 대학을 마치지 못하고 오랫동안 가정교사로 생계를 꾸렸는데, 칸트의 저작을 읽고 깊은 충격을 받아 걸어서 쾨니히스베르크로 칸트를 찾아가 종교철학 논문을 써서 가르침을 청했다. 이 글은 익명으로 출판되자 널리 칸트의 신작으로 여겨졌고, 피히테는 이로써 단번에 유명해져 서른두 살에 예나 대학 교수로 초빙되었다. 몇 해 뒤 무신론을 퍼뜨렸다는 고발을 당해 자리에서 물러나 베를린으로 옮겼다. 나폴레옹이 베를린을 점령한 동안 그는 유명한 『독일 국민에게 고함』을 강연했다. 그는 베를린 대학의 초대 총장이었으며, 쉰한 살에 부상병을 돌보던 아내에게서 발진티푸스가 옮아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