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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양명

1472–1529년

왕수인은 호가 양명으로, 1472년 저장성 위야오에서 태어났다. 젊어서 성현이 되겠다는 뜻을 세우고, 주희의 '격물' 설을 따라 대나무 앞에서 이레 밤낮으로 그 이치를 궁구하다가 병이 나고 말았다. 서른다섯 살 때 환관 유근의 미움을 사서 조정에서 곤장 마흔 대를 맞고 구이저우 용장의 역승으로 좌천되었다. 황량한 용장에서 그는 밤낮으로 정좌하다가 어느 한밤중에 문득 크게 깨달았다. '성인의 도는 내 본성에 스스로 갖추어져 있으니, 지난날 사물에서 이치를 구한 것은 잘못이었다.' 이것이 유명한 '용장오도'이다. 그 뒤 여러 차례 군공을 세워 영왕의 난을 평정했고, 난징 병부상서에 올라 신건백에 봉해졌다. 그는 심학의 집대성자이며, 일본의 메이지 유신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서고의 작품